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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양식에서 현대를 잇는 조화미의 창견 - 역사적 의미와 미학적 의미, 그리고 형상적 의미를 표상 -
박명인(미술평론가 · 한국미학지음회 회장)
현대미술은 반미적 예술을 외치며 미적 차원을 극복하려고 한계성을 제시하면서 액츄얼(actual)한 문제 제기를 했다. 그것이 추상미술의 출현이다. 그러나 구상미술을 딛고 일어섰다고 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미술은 미학에서 말하듯이 반복성, 복제성, 모방성이 있어서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가 표현하는데 있어서 구상이나 비구상이나 경계선을 끗는 것도 타당치 못하다. 화가의 의욕은 사유하는 대로 표현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최종옥의 회화를 보면서 추상과 구상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최종옥은 표현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남다른 사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미를 은근에서, 그리고 끈기는 한국의 힘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근성은 한국의 특성이다. 흔히 잡초같은 민족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비아냥대는 어리석은 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왕조가 600년 이상 유지된 것은 오직 한국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오랜 왕조가 유지되었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바로 최종옥이 주장하는 끈기와 은근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문화가 전통을 잇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은근(慇懃)이란 의미는 태도가 겸손하고 정중하며, 은밀하게 정이 깊다는 의미이다. 한국인은 애초부터 불교나 유교의 사상이 깊어서 예의범절이 바르고 정이 넘치는 민족이다.
이같은 사유는 자연의 물상이나 역사적 문화재를 향해 교감하면서 대상의 구체적 양상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대로 지각을 지속하여 과거와 현대를 잇는 양상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최종옥은 자연의 물상이나 역사적 문화재를 향해, 교감하며 대상의 구체적 양상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대로 지각을 지속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양상(樣相)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 대상 물체로 있을 때와 그림으로 그려 놓았을 때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역사적 대상 물체는 시각적인 그대로 역사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종옥이 화폭에 옮겨 놓았을 때는 역사적 의미와 미학적 의미, 그리고 형상적 의미를 표상하고 있으므로 예술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니까 시각적으로 보이는 물체의 실제성 정상(情狀)이 아니라 대상 물체로부터 심미의식을 표출한 미적 소산(所産)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표제에 ‘깊은 물은 소리가 없다’라는 말에 간과할 수 없는 미학적 이유가 있다. 대부분 미나 예술에 관한 소견이 좁은 관견(管見)이 보편적이지만 예술적 작품에 임하는 사유는 정신적 내면의 형상이 도출되기 때문에 깊은 의미가 있다. 이것을 최종옥은 ‘깊은 물은 소리없이 흐른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같은 의미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광의적인 사유는 무형의 의식이며 감성으로서 미적 존재가치를 형성하게 된다. 실상 자연의 이치를 보더라고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대기 중에 무형의 존재로 형성되어 있는 기류(氣流)나 바다와 같이 깊은 물의 수류(水流)는 소위 바람의 소리, 물의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이것은 인간의 두뇌에 존재하는 수류나 기류와 같은 움직임을 갖고 있어서 수많은 사유로 인해 무엇인가 창견(創見)하게 되고 발견과 발명을 낳게 되는 것이다. 사물의 무형적 유형적 생태의 순간적 인식의 차이가 있으나 최종옥은 물을 보면서 고요를 생각해 냈다. 태공 강여산이 물가에 앉아 미끼도 없이 낚시대를 걸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병법을 생각해 낸 것과 마찬가지로 ‘소리가 없다’라는 말은 사유의 근간이다. 그러니까 최종옥은 소리없는 깊은 물을 심오한 정신적 내면의 세계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리랑 판타지, 우주의 신비, 아름다운 색의 여정과 같은 추상작품에서는 옛 것을 살피며 고향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강한 예술적 감성을 되살리려고 했다. 이것을 최종옥은 ‘자연스러운 멋과 정신이 은근한 끈기가 작품에 스며 녹아있게 하려고 했다’라고 말한다. 특히 구상회화는 적당히 시각적으로 어색하지 않게 그려도 무방하다는 생각에 빠져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비슷한 것을 계속 반복하게 되지만 추상회화는 그 자체가 비슷한 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무엇보다 화가의 사유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의미 부여가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최종옥의 작품은 결구주의적(結構主義的) 작품이라고 할 수 없으며 민족적 특성과, 고산 고찰의 아름다움을 모식(模式)으로 표준하고 있는, 즉 전형적인 형식을 표현하는 사유성이 돋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민족적이거나 역사적인 모티브에는 솔직하고 순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의미가 퇴색된다. 과거와 현재를 평저울에 놓고 보았을 때 상반된 두 관점이 있다. 첫째 인간중심주의이다. 이것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인간화하기 위해 산을 깎아 구조물을 세우고 강이나 바다를 메우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인간의 행위는 오늘날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생태중심주의이다. 이것은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인류문화발달에 걸림돌이 된다. 여기에서 진정한 예술인은 두 관점을 모두 수용한다. 자연이 변천해도 그곳에서 인위적으로 변화시킨 자연이 아니라 자연의 순수한 경색(景色)을 찾아내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며, 변해가는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고 지키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최종옥의 작품에서 보면, 구상이던 추상이던 순수한 아름다움이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순수하다는 것은 최종옥의 사유 이외에는 잡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민족성과 역사성에 천착(穿鑿)하면서 그 범주 내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 의미와 미적 소산(所産)을 찾아내고 재구성하는 미적 완성이며, 구태여 사상이나 특수한 기법을 강조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자연 그 자체가 순수이며 미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이연(所以然)을 무시한 표현은 통일성이 없으므로 최종옥의 논리적인 심미의식의 통일성은 작품의 통일성으로 표출된다. 따라서 구성된 통일성은 조화를 이루게 되며 협화의 법칙을 표출하게 된다. 자신만의 모식(模式)으로써 독자적인 표현양식이다. 끝으로 부언하자면, 예술작품은 관심을 이끄는 힘이 없으면 안 된다. 이 힘은 새로운 미적 질을 구성하게 되고 관심으로부터 흥미라는 힘이 작품에 투영되고 더불어 감상자가 느끼는 관심은 상호 연관되어 흥미를 유발한다. 이러한 감상자의 흥미로 인해 최종옥은 일거에 예술의 모든 목적을 달성하게 되고 사람을 즐겁게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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